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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쥬니와 하이미네 ^ ^
눈물이 주르륵... 본문
엄마가 한국으로 돌아가신지 벌써 21일이 지났다.
지난 1월 오빠의 졸업연주와 동생의 입시로 내가 독일로 유학 온지 만 6년만에 독일을 방문 하셨다.
그러고 보니 이번 8월이 내가 독일에 머문지 6년이 된다.
사실 작년 9월부터 내년 초엔 꼭 독일 오시라고 얘기를 했고 몇번이고 가니 마니 하다가
결국엔 1월 16일에 독일 땅을 밟으셨다.
1월 16일 박자기와 동생과 프랑크푸르트로 모시러 갔다.
드디어 너무나 보고 싶었고 보고 싶던 엄마가 나오시고 우리는 3시간이 넘는 시간을
열심히 수다를 떨며 카셀로 돌아왔다.
사실 나의 바람에 엄마가 몇십년간 쉬지도 못하시고 힘든 한국 생활에서 벗어나
조금은 편히 마음껏 쉬고 주무시고 즐기시다 가시길 바랬다.
맛있는 것도 맘대로 다 해먹고 여행도 실컷 하고...
하지만 역시 독일의 겨울은 한국에서 엄마를 가만 두지 않았고 엄마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무거운 머리를 어찌하시질 못했다.
그래도 사위 졸업연주인데 그래도 딸이 먼 땅에 와서 처음 치루는 시험인데...
하면서 겨우겨우 버티신거 같다.
그리고 카셀에 계신 중간중간 뒤셀에 계신 이모댁에 가서 일주에서 이주 정도 머무시고 오셨다.
엄마는 혼자 기차를 타고 뒤셀에 가셨다.
엄마가 뒤셀 갔다와서 하시는 말씀이 기차 타고 가는 내내 우셨다고...
청은이가 이렇게 먼길을 혼자 다녔구나 하면서 너무 안타까워서 우셨다고...
내가 독일에서 엄마께 해 드릴 수 있는 건 유일하게 음식... 맛있는 거라도 마음껏 해드리고 싶었지만
유학생 신분에 무슨 돈이 있어서... 마음껏 해드릴 수도 없었다.
그래도 엄마는 우리와 같이 먹는 건 다 맛있으시다고 잘 드셨다.
정말 그래도 최선을 다해 평소에 엄마와 같이 먹고 싶었던 음식이라던지 내가 해드릴 수 있는 음식은 다 해드렸다.
그리고 겨우겨우 여행이라도 같이 가고 싶어서 계획을 열심히 짰지만 그것 또한 이모께 뺏기고(?)...
그렇게 지내시다가 두달만에 우중충한 힘든 독일 날씨에 얼굴이 퉁퉁 부으신 채로 한국으로 돌아가셨다.
그리고 한달 뒤...
5월 19일 새벽 1시...
엄마 내일 독일 간다. 이모부께서 돌아가셨다.
엄마는 한국에 돌아가신지 한달만에 다시 독일에 오셨다.
엄마를 공항에서 만나서 뒤셀 이모집으로 같이 갔다.
정말 내가 독일에 온 이래로 가장 정신 없이 보낸거 같다.
잠도 잠이고 사람은 계속 오고 전화도 계속 오고...
그러면서 계속 드는 생각은 엄마가 과연 잘 견디실까...
일주일 엄마 곁에서 있다가 난 다시 카셀로 돌아왔다.
그렇게 한달동안 엄마는 이모 곁을 지키면서 일 처리로 열흘 미국도 갔다오시고 사실 견딘 엄마가 대단해 보이면서 너무너무 속상했다.
다른 자식들처럼 차가 있어서 모시러 다닐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돈이 있어서 해드리고 싶은거 원하시는 다 해드릴 수 도 없고
옆에서 계속 지켜드리면서 도와드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엄마는 또 힘들게 독일에서의 한달을 보내시고 한국으로 돌아가셨다.
참고로 엄마는 이젠 독일에 6개월이 지나야 나오실 수 있다.
난 내가 한국에 없어서 엄마께 해드릴 수 있는게 하나도 없어서 오시면 내 맘처럼 다 해드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해드리긴 커녕 더 힘들게 지내시다 가시게 한거 같아서 차라리 한국에 계시는게 낫겠다 생각했다.
마음은 너무너무 안 좋았지만 한국에선 여기보다 더 편히 지내시겠지 생각하고...
엄마를 공항에 모셔다 드리고 게이트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눈물을 흘리진 않았다.
그런 나의 모습을 보고 박자기는 우리 이자기는 참 강한거 같애.
사실 슬펐다. 하지만 내가 눈물을 보이기엔 해드린게 너무 없어서 눈물을 흘릴 수가 없었다.
다음번에 잘 되서 진짜 편히 계시다 가시게 해야지라는 생각 밖에 안들었다.
카셀로 오는 내내 박자기가 마음이 안좋지... 힘들지...??
하지만 그날은 그저 피곤하다 쉬고 싶다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리고 진짜 다음번엔 꼭...
다음날...
교회에 수정언니의 몸조리를 위해 한국에서 오신 친정 어머니가 오셨다.
광고시간 방문하신 분을 소개하고 목사님께서 기도를 해주시는데...
그 전까지는 진짜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기분이 아주 좋았는데...
기도가 시작 하자 마자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 했다.
처음엔 내가 왜 울고 있지...??
눈물을 참으려고 위를 쳐다보기도 하고 다른 생각을 하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이미 눈물은 내가 주체 할 수 없을 정도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축도가 끝나고 성가대의 노래가 흐르는데도 난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뒤에 앉아있던 동생이 덩달아 울기 시작 했다.
정말 엄마가 너무 보고 싶고 너무 죄송하고 또 너무 보고 싶었다.
그렇게 한참을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날 하루종일 마음이 아렸다.
근데 아직도 마음이 아려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