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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8월 3일 본문

이자기 방/하고픈이야기

2003년 8월 3일

Bach81 2009. 8. 4. 06:48


오늘은 내가 독일 생활을 시작한 6년이 됐다.
지금 생각 해보면 왜 내가 독일을 나오게 됐는지 생각이 정확히는 나진 않는다.
단 한가지 무기 만들러 갑니다 라고 사람들에게 얘기 했던거 같다.
남들처럼 건강한 것도 아니고 몸집이 큰 것도 아니고 성격이 싹싹해서 사람을 잘 사귀는 성격도 아니고
머리가 좋아서 공부를 잘 하는 것도 아니고 뛰어난 아이디어로 디자인계의 별이 될 것도 아니고...
하지만 한 성격하는 나로선 누군가에게 무시 당하고 사는건 용납 할 수 없지만 사실 당하고 살지도 않지만
나에게 히든카드가 하나는 필요했다.
한국에서 참 행복하게 아주 생각없이 초중고대를 다 다녔지만 학교 다닐땐 학교만 열심히 다니면
일 할 수 있는 자리가 짠 하고 나타날 줄 알았는데 쉽진 않았다.
사실 성격상 한 곳에 들어가면 죽은듯이 열심히 일은 하겠지만 나에겐 무언가가 필요했다.
좀 강하게 무기 만들러...
그리고 결정한 것이 독일 유학...
왜 독일로 결정한지는 모르지만 이모가 계셨기에 어릴때부터 익숙한 나라였다.
그리고 미국보다 유학비가 덜 들기에 결정을 했다.
울 지혜로우신 울 엄마가 집을 먼저 구해 놓으시고 부랴부랴 비자를 신청해서
2003년 8월 3일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아시아나를 타고 독일로 향했다.
비행기에서 아주 차가운 에어컨 바람에 감기 된통 걸려주시고 유학 첫날부터 고열로 눈물을 보였다.
그리고 한달 간의 전 방주인과의 동거 후 10월부터 난 드디어 나홀로 유학생활을 시작했다.
2003년은 내가 지금까지 보낸 독일의 여름 중에 제일 더웠던거 같다.
카셀에서 제일 높은 Wilhelmshöhe에 아지랑이 올라올만큼 더웠다.
해 짧은 독일의 가을 겨울 아침 일찍 일어나 어학원을 다녔고 학교를 들어가기 위해 Mappe를 만들기 시작했다.
난 내가 전공한 제품디자인 보다 컴퓨터를 이용해 공부를 할 수 있는 웹디자인을 하고 싶어서
처음엔 시각디자인 교수한테 Kontakt를 했지만 내가 그당시에 가지고 있는 스타일이 자꾸 제품으로 쏠리는 바람에
제품디자인과를 접수를 하고 2004년 7월 Kassel Kunsthochschule의 Produktdesign에 합격을 했다.
하지만 합격만으로 학교를 다닐 수 없었고 난 합격후에도 2년이라는 시간을 어학시험을 위해 투자를 해야했다.
정말 힘들었다.
오히려 학교 준비보다 어학시험 할때 제일 힘들었고 덕분에(?) 손목통증으로 아직까지 고생하고 있다.
공부에 소질이 없는 나로선 정말 죽은듯이 하긴 했지만 능률이 잘 오르진 않았다.
이렇게 공부했으면 수능 만점 받았을텐데...;;;
그 힘들때 힘이 되준 나의 박자기...
처음엔 그저 같이 밥 먹기 위해 만나던 것이 통화도 하게 되고 명록이에 글도 남기고 같이 있는 시간이 늘어갔다.
난 2006년 2월 DSH를 합격했다.
난 지친 몸을 달래기 위해 3개월간 한국을 방문 했고 다시 독일로 돌아와
그해 10월부터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는데...
그때만 생각하면 눈물부터 난다.
맘 고생도 심했고 그렇게 많이 아파보긴 처음이였다.
박자기는 내가 너무 힘들어하는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서 울 토토를 데리고 왔다.
그리고 부모님께서 결혼 승락을 해주셨고 2007년 4월 약혼을 했고
2007년 8월 11일 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다음주 화요일이면 벌써 결혼 2주년이다.
어찌보면 참 한 것 없이 6년이 지난거 같지만 참 많이 성숙 할 수 있었던 6년이 된거 같다.
내가 한국에 있었으면 이렇게 클 수 있었을까 의문도 든다.
아직 부모님께 완전히 독립하진 못했다.
요즘 그것 때문에 마음이 너무 안 좋다.
넉넉치도 않은 살림인데 한푼을 도와드리지는 못 할 망정 받아쓰는 입장이니...
그렇다고 옆에 살아서 생신을 챙겨 드릴 수 있는것도 아니고... 보고 싶을때 뵐 수 있는것도 아니고...
결혼 후 우리 둘은 한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혼자 였을땐 얼릉 공부 끝내고 한국가서 가족이랑 살아야지라는 생각뿐였는데
이젠 지금 당장은 무언가를 보여 줄 수는 없지만 5년 10년후를 바라다 볼 수 있다는 것이 달라졌다.
한국에 있었으면 그저 발끝만 바라보면 동동 발만 구르고 있었을텐데 지금은 멀리 볼 수 있는 눈이 생기고 있는거 같다.
그리고 나의 믿음에 대한 눈도 많이 달라졌고...
내일 여권 연장을 위해 프랑크푸르트에 간다.
5년전 여권을 한번 연장을 했는데 이번엔 전자여권을 만들러 간다.
그리고 이번 달 말에 또 비자 연장을 하러 간다.
외국에 사는 사람이라면 비자는 생명과 같을 것이다.
누구나 한꺼번에 많이 받기를 원할것이고...
그래서 나도 더 많이 받기 위해 새 여권을 만들러 간다.
이젠 독일 사는데 평소에는 어려움을 느낀진 못한다. 관공소 갈때 빼고... 왠지 모를 두려움...
그래도 점점 느껴지는 언어의 장벽...
내년에 나는 목표 하나를 가지고 있다.
그것을 위해 몸도 만들고 어학도 많이 하고 책도 많이 읽고 이사도 가게 될것이다.
얼마나 더 독일에 머물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독일에 머물 수 있다면 오래 머물렀으면 하는게 지금 생각이다.
내 몸이 힘들겠지만 살면 살수록 살기 좋은 나라 라는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도 일년 또는 2년에 한번은 한국 가게 해주세요^^
6년간 무사히 이곳에서 잘 생활하게 해준 주님께 감사하고 가족들의 기도에 감사하고
내 평생의 동반자 박자기를 만날 수 있게 되어서 더 감사하다.
남은 생애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면서 잘 자라주길 나 스스로에게 바란다.
아직 내가 갈고 닦은 무기가 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무언가 만들어지고 있는것 같다.
잘 견뎠어 청은아 ^^ 더 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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